김제 벽골제-지평선축제 후
전국의 모든? 축제가 지난 일요일 ~24 로 마무리 되었지만
그 뒷끝의 한적함도 좋을듯하여
조용한 분위기롤 맛보러 가 본 곳.
김제 지평선 축제 후
백제 11대 비류왕 27년(330년)에 벽골제 제방이 축조되었답니다.
그후, 조선시대 건립한 중수비가 1963년에 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었대요.
"김제 벽골제" 라고.
조상들의 전통문화와 예절 교육을 익히는 배움터를
해학적으로 표현하여 웃을을 짓게 만듭니다.
서당 마당 담너머로
살며시 엿보는
학부모의 모습이 요즘과 같으네요.
혹시나 벌 서고 있는 녀석의 아버지는 아닐런지 궁금...
전통 놀이
투호, 고리걸기, 굴렁쇠굴리기, 제기차기, 팽이치기등
민속놀이와
고무줄 놀이, 팔방놀이, 비석치기 등의
전래놀이들로
즐거웠을 겁니다.
소를 이용한 방앗간.
키가 큰
감나무에서 감따기?
벽천 나상목 선생의 기념미술관
벽골제 제방을 쌓는데만
연인원 32만명이 동원되었다 추산하다는데,
이외에도
수문, 하천공사 등까지 합하면
엄청 많은 숫자로,
당시의 사회규모나 인구수로 보아
거대한 국가사업으로 짐작됩니다.
벽골제를 중심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설 한토막.
o고려시대 몽고 침략시 대장군으로 활약한 조연벽 장군이
백룡과 청룡의 싸움에서 백룡을 도와 청룡을 물리쳤고,
그 보답으로 김제 조씨 감문의 터전을 약속받았다는 설과,
o신라 원성왕때 김제 태수의 딸인 '단야'가
스스로 청룡의 제물이 되어 아버지를 돕고
벽골제 보수공사를 무사히 마무리 지을수 있게 되었단 설이 있는데
백룡은 백성들을 도우려 하고,
청룡을 백성들을 해치고, 벽골제 축성을 방해한 나쁜 용이었다고 합니다.
세상사 어디에나 '나쁜 놈?'은 있어
순조롭게만 풀리지 않는 어려움이 있게 마련이라는 이야기인가 봅니다.
두 마리의 용중,
어는 것이 백룡일까요?
여의주도 똑 같이 물었네요?
용의 모습이 어째,
무시무시한 '드래곤"같아 보입니다.
뚝방너머에 있는 벽골제 모습
사랑의 다리
단야 공주와 원덕 도령이
거닐었던 다리
멋진 나무 다리에
꼬마전구로 조명불을 밝히면
선남서녀들이 이 다리를 걷기위해
인산인해? 를 이룬대요.
한벌 걸어보시지요.
즐거운 마당쇠 놀이터
벽골제 축조 모습
논에 새겨진 글자
흑미로 미리 심어서 글자로 나타내
선명하고 아름다운 디자인 입니다.
건너편이 벽골제
다리도 아프니
쉬어간들 어떠리~~~!!!
유치원과 어린이집 아이들이 현장학습후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어찌나 질서있고,
차분하게 앉아서 식사를 하는지
참 귀여웠습니다.
"우리들이 배워야 할 것은 이미 유치원 시절에 다 배웠다."는
어느 서양 교육학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어른들이 모두 본받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한 장면을 담아보았습니다.
"참 잘했어요. 우리의 미래들"
아리랑 문학관
소설가 조정래
소설가 '아리랑'의 작가 조정래.
"36년간 죽어간 민족의 수가 400만. 2백자 원고지 18,000 매를 쓴다 해도
내가 쓸 수 있는 글자수는 고작 300여만자!"
지난날 식민지 역사 속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흘린 사람들을 잊을 수 있으리오.
식민지 시대의 민족 수난과 투쟁을 직시하자는 작가의 말씀입니다.
(벽골제 안내서에서 발췌한 글의 일부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
가정식 백반 6,000 원.
마음을 가다듬는 차 한잔으로...
경내를 벗어나서...
그리고 찻집
1잔에 7,000 원.
자릿값.
백반값보다 찻값이 더 더,
요런게 문화인이라는 증좌입니다.
징게맹겡이 들판을 건너
코스모스 길로 이어진
김제 벽골제 행사후 .
파란 가을 하늘만큼 가슴 속이 확트이는 시간이었습니다.
행사 후라서
오히려 더 조용함이 좋았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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